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볼리비아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에두아르도 비예가스이다. 하나의 초록(La Verde)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유니폼 스폰서는 마라톤(marathon)이다.
2. 특징
해발 3600m에 달하는 홈그라운드의 특성상 남아메리카 지역예선에서는 전형적인 '''안방 챔피언'''이다. 심지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세계적인 강호들도 고전시킨다. 관광하러 라파스에 온 사람들은 '''걷기만 해도 숨이 차고 어지럽고 할 정도니 당연하다.''' 오히려 이 강호들은 기초대사량이 더 높은만큼 고산병에 더 견디기 힘들다. 의외로 브라질이 이 무적의 볼리비아를 깨고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자체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고 저지대에서는 반대로 자신들이 적응을 못하기 때문에 원정경기에서 취약점을 드러내며 이 때문에 본선에 거의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1930년, 1950년, 1994년 총 3회 본선에 올랐는데, 1930년 대회는 최초의 월드컵으로 참가국이 13개에 불과하여 지역예선 자체가 없었고, 1950년 대회도 2차 세계대전 직후 대회라 아르헨티나 등 초강력한 팀들이 연달아 기권하는 바람에 자리가 남아서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그나마 본선에 가도 조별리그에서 모두 탈락하였다. 특히 1950년 대회에는 볼리비아가 속한 팀에서 우루과이 이외의 모든 팀들이 편성되는 족족 기권을 해대는지라 결국은 그 둘간의 경기가 그 조의 유일한 경기가 되어서 이기면 바로 결승리그라는 행운을 얻었으나, 우루과이한테 0-8로 탈탈 털렸다. 그 후 44년이 지나서야 천신만고 끝에 1994 미국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첫 상대인 디펜딩 챔피언 독일에 0:1로 패했다. 두번째 상대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0-0 무재배로 첫 승점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2] 이 경기는 한국이 해외 배팅에서 '''월드컵 본선 경기 최초로''' 정배당을 받은 경기였다. 즉 한국이 이기면 1.1배 정도로 거의 본전치기에 가까운 돈만 준다는 소리였는데 사실 이는 볼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약체 더비.''' 이후 마지막 상대인 스페인에 1-3으로 패했는데, 이 경기에서 에르윈 산체스가 기록한 1골이 현재까지 볼리비아가 월드컵에서 기록한 유일한 골이다. 즉 1994년 월드컵이 볼리비아로선 그런대로 선전했다고 볼 수 있는 대회였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6-1의 대승을 거두었다. 다만 이건 아르헨티나의 준비 부족 및 컨디션 난조가 컸다. 경기가 3600m의 고지대에서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경기 시간 두 시간 전에야 경기장에 도착해 고지대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고지대로 인해 천하의 망신을 산 마라도나가 그 전에 고지대 경기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것.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경기 도중 앙헬 디 마리아가 퇴장당하자 이후 정신줄을 놓고 그냥 자멸해버렸다.
한국과의 전적은 3전 2무 1패로 열세. 첫번째 맞대결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맞대결이었다. 이때 한국이 시종일관 주도권을 가지고 볼리비아를 압도하였지만 마무리가 부족하여 아쉽게 비겼고[3] 24년이 지난 2018년 6월에 러시아 월드컵 직전 평가전으로, 한국대표팀 중간 캠프가 차려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티볼리 스타디움에서 두번째 맞대결을 펼쳤는데 이 때도 0대0으로 비겼다. 2019년 3월 2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경기에서 이청용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대1로 패했다.
브라질 세리 A에서 뛰고 있는 국가대표 핵심 선수인 마르셀로 마르틴스를 비롯해 후안 카를로스 아르세, 야스마니 캄포스, 카를로스 람페 등 대표팀 주전 멤버들이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마땅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 리빌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틀레치쿠 고이아넨시 소속의 헨리 바카 정도가 유망주로 꼽히고 있으며 나머지 대체자들은 국내 리그 선수들 위주로 계속 실험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3.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4. 역대 전적
4.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69위'''
월드컵에 통산 3번 진출해 총성적 '''0승 1무 5패, 1득점 20실점'''에 승점은 '''1점'''이다. 아이슬란드, 쿠웨이트,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승점이 같지만 평균 점수[8] 에서 아이슬란드 · 쿠웨이트 · 트리니다드 토바고 0.33(승점 1점 / 3경기), 볼리비아 0.17(승점 1점 / 6경기)를 기록하여 승점이 같은 네 나라 중 순위가 가장 낮아 월드컵 통산 순위 '''69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브라질 1패(1930), 독일 1패(1994), 스페인 1패(1994), 우루과이 1패(1950), 세르비아 1패(1930), 한국 1무(1994)를 기록중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3패, 남미 2패, 아시아 1무이다. 한 경기 최다득점은 1994년 조별리그 스페인전 1:3 패로, 이게 볼리비아가 본선에서 넣은 유일한 골이다. 나머지 경기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최다실점 기록은 1950년 조별리그 우루과이전으로 0:8 패배, 무려 8골을 허용해 역대 월드컵 최다 점수차 2위에 올라있다. 결국 볼리비아가 월드컵에서 '첫 승점과 첫 득점'을 얻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64년'''이었다.
남미의 공식 승점자판기이자 안방 챔피언으로서 홈에서는 우승후보, 나가서는 최약체의 자리를 면치 못하는 신세. 덕분에 월드컵에 3회밖에 진출하지 못했는데, 그나마도 1930년은 초대 월드컵으로 신청만 하면 참가할 수 있었고 1950년에는 워낙 기권국가가 많아서 예선을 치르지 않고 자동진출한 것이다. 결국 남미예선을 통과한 대회는 '''1994년 미국대회 하나뿐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와 붙었으며 대한민국의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됐지만 0:0 무재배로 끝났다. 볼리비아에게는 월드컵 역사상 첫 승점이었으며 중요한 것은 우리와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월드컵 첫 골조차 터뜨리지 못했다. 조별예선 마지막 스페인전 가서야 첫 골을 뽑았지만 1:3으로 패배. 뭔가 월드컵과 상성이 안 맞는지 팀 자체가 약한건지 도통 모습도 안 보이고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낸 적이 없다.
그래도 남미가 아닌 다른 대륙이라면 충분히 월드컵 본선을 넘볼만한 전력은 된다. 북중미만 가도 온두라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박빙이거나 근소 우위의 전력이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경쟁권에 충분히 들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지만 팀이 남미에 있어 월드컵 본선을 노리기가 너무 어렵다. 그나마 안방 챔피언의 장점을 잘 살려서 2014년의 에콰도르처럼 한다면 본선은 어찌어찌 넘볼 수 있겠다.
4.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3. 코파 아메리카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역대 순위 : 8위'''
4.3.1.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4.3.2. 코파 아메리카
[1] 스페인어[2] 한국은 당시 황선홍이 수많은 골찬스를 모두 날려먹어 16강 탈락의 원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가 8년 후 한일 월드컵에서 명성을 되찾는다.[3] 황선홍이 전 국민에게 질타받게 된 바로 그 경기.[4] 브라질, 유고슬라비아와 만나서 두 팀에게 각각 0:4로 패[5] 같은 조에 편성된 스코틀랜드, 터키가 기권하는 바람에 졸지에 우루과이와 단판승부가 되었다. 대회 우승국이었던 우루과이에게 영혼까지 털리며 0:8 대패.[6] 전 대회 우승국 독일과 개막전에서 0:1로 선전하고,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0:0으로 방어하며 64년만에 첫 승점을 따냈다. 그리고 마지막 스페인전에서도 첫 골을 뽑아냈는데 월드컵 사상 가장 늦게 승점, 득점을 올린 팀이 되었다. 현재까지는[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8]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9] 대회 시작 10년만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최종 5위로 4전 4패 최하위에 머물렀다.[10] 18년만의 대회에 다시 참여해 에콰도르를 겨우 제치고 최종 6위를 차지했다.[11] 세 대회 연속 최하위권에 있었지만 브라질 대회에서 4위까지 뛰어오르며 선전했다. 특히 우루과이를 상대로 3:2로 잡아내며 순위까지 밀어냈는데 1년 뒤 월드컵에선 0:8로 제대로 복수당했고 그 우루과이가 같은 브라질 땅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12] 참가 37년만에 처음으로 개최에 성공했으며, 그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볼리비아 역사상 아직까지도 메이저대회에서 유일하게 우승한 대회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의 이점을 잘 활용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우루과이, 칠레는 아예 기권까지 했을 정도로 변수가 많았다.[13] 전 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코파아메리카 유일의 지역예선에서 떨어진 두 나라(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제외하고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 단 한골도 뽑아내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14]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으며, 이 대회부터 풀리그가 아닌 조별리그+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15]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16]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17] 20년만에 개최국을 다시 선정하기 시작했으며, 아르헨티나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18] 참가국을 12개로 확대해 타 대륙팀을 초청하기 시작했고, 첫 초청국은 멕시코와 미국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토너먼트를 8강까지 확대하면서 지금과 같은 대회가 완성되었다.[19] 대회 규정이 바뀌고 20년만에 처음으로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에 이기고 칠레와 비기며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 모두 1:2 한점차 패배를 하는 등 경기 내용도 상당히 나아졌다.[20] 34년만에 두 번째 개최를 이뤄내 자국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고지대+ 홈 어드벤티지의 이점을 적극 살려 결승에 오르기까지 5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지만, 결승에서 브라질에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여담으로, 코파아메리카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 자국 대회 뿐일 정도로 홈과 원정 차이가 상당히 심하다.